거미의 집
이 소설은 한 생이 얼마나 순서 없이 복잡하게 얽힐 수 있는가를 두서없는 문체로 잘 보여준 픽션이다. 픽션이지만 어쩌면 실제이기도 한 듯이 적나라하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위해 시와 산문과 소설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글쓰기를 이어간다.
화자 ‘나’는 그녀를 기다린다. 끝없이 기다린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을 위태롭게 낭떠러지에 내모는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시대 젊은이의 초상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왜 그는 자해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을 했을까.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소설은 철저히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되며 그만큼 사랑이 한 인간을 파괴해 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독자로 하여금 사랑의 세계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곳은 시인이 직조한, 시인의 사랑으로 가득 찬 세계다. 어둡고 습하고 자해적인 시인의 정신세계로 인해 주인공은 군데군데 시를 낳는다. 독자는 일견 난해해 보이는 언어와 문장 속에서 시를 만난다. 시의 발원지라고 해도 좋을, 시를 낳기 위한 한 영혼의 여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코 길지 않은 이 책은 사랑과 인간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질문들을 모두 담아낸다. 고독과 분열의 언어로 쓰인 사랑 소설을 통해 독자는 사랑의 본질, 그 깊고 뜨거운 감각을 다시금 새롭게 마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숭의여대 교수 · 만해학회장 역임
시집 〈풍경 아카이브〉 외 5권
산문집 〈숨의 언어〉 〈도시락〉 희곡집 〈원효〉
현대불교문학상 · 이상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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