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버스야
정현종 시인의 산문은
행복을 노래함으로써 고통을 뛰어넘는 꽃이다.
세상의 무거움을 통과해 날아오르는 경쾌한 언어들의 진경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인문 정신의 치열함 속에 언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는 산문집 날아라 버스야가 문학판 〈정현종 문학 에디션〉을 통해 다시 재출간되었다. 이번 개정판은 정현종 시인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산문집으로 『정현종 문학 에디션』(『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릴케 시 여행』,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네루다 시 여행』,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로르카 시 여행』, 『섬』,『날아라 버스야』) 중 다섯 번째 시리즈이다. 시인이 30년 넘게 써온 글들 중에서 정수만 가려 뽑은 산문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리의 삶에 유연하게 스며든다.
날아라 버스야는 세상의 무거움을 통과해 날아오르는 경쾌하고 자유로운 언어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철학적인 사유와 무한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시어로 우리 현대 시사(詩史)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해온 정현종 시인의 시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한 권의 시론집으로도 손색없을 만큼 탄탄한 사유와 밀도 높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예술과 인문 정신이 결합된 산문의 한 진경을 보여 주는 이번 산문집은 육중한 바윗덩어리를 비집고 나오는 샘물처럼 가볍고 맑다. 시론이 곧 인생론이고 시와 삶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시인의 글들은 어둠 속의 별처럼 환하게 빛난다. 이 산문집은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통찰의 소중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날아라 버스야는 평소 정현종 시인이 바라보는 사물, 현상, 시인론에 대한 깊은 시선과 그 시선들을 둘러싼 자신의 소회를 진솔하게 기록하여 전한다. 1부 〈현재를 기다린다〉는 시인의 유년과 과거의 추억, 인상적인 사물에 대한 단상, 젊은 시절의 독서, 인간과 세상사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한다. 2부 〈추락이여, 안녕〉은 저자의 예술론이 담겨 있는데 춤, 몸, 바람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미학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인다. 3부 〈빛-언어, 깃-언어〉는 본격적인 시론과 외국 시인들에 대한 시인론이 실려 있다. 네루다, 바예호, 로르카 등 정현종 시인이 좋아하는 시인들에 대한 공감은 이 산문집을 읽는 독자들 또한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산문집 날아라 버스야는 현실을 넘어서는 비상을 보여 주었던 시인들에게 보내는 찬사이자 동시에 뛰어난 시인론이다.
공간 속의 사물과 인문 정신이 절묘하게 교차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정현종은 생명의 시인이다. 한 섬세한 시인의 눈길이 가닿은 사물은 시인을 통해서 비로소 살아나고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사물은 우리의 삶과 우주의 섭리를 드러낸다. 즉 시인은 사물을 창조하는 자이다. 아무리 하잘것없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사물을 보는 마음에 따라, 관찰하는 각도에 따라 사물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사물이 성찰의 대상이 되고 관조의 대상이 될 때 사물의 형이상학은 가능해진다. 그러나 사물을 사용가치로만 볼 때 우리의 삶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시인이란, 인간 중심주의나 인간 우월주의와 결별하는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산문을 통해 알게 된다.
정현종 시인이 보여 주는 사물에 대한 예민한 통찰은 날아라 버스야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시인은 수많은 생물들 중 두 가지 예에 불과한 ‘새’와 ‘나무’의 미덕, 능력, 존재 자체로의 가치를 예찬함으로써 인간이 다른 생물에 비해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미화시켜 왔다는 것을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나무를 ‘서 있는 노래’로 칭하며, 탄력의 화신이자 호흡의 신(?나무 예찬?)이라고 예찬하는 시인의 시선은 전혀 과장되어 있지 않다. 새와 나무가 없었다면 인간은 상승 이미지와 관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정현종 시인은 거의 모든 사물에서 리듬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시간 속에 있는 공간과 더불어 우리에게 지각되는 새벽이라는 시간(?새벽의 메아리?)을 시인 특유의 철학적 사유와 감각적인 시선들로 풀어내기도 하고, 명상이라는 심적 공간(?세속에서의 명상?)을 보통 사람도 들어가 볼 수 있는 실천의 체험으로 구체화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이 산문집은 미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공간 속의 사물과 인문 정신이 실제가 되어 절묘하게 교차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한다. 그 순간, 독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생(生)의 한가운데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의 내적 움직임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들에 대항하는 힘,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정현종 시인은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시인에게 아름다움이란 생동하는 자유로운 움직임이다. 그의 놀라운 시선으로 보면 땅은 인간들을 밑으로 끌어내리는 인력의 법칙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영혼을 튕겨 올리는 탄력도 갖고 있다. 우리는 그 탄력 때문에 땅 위를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현종 시인이 아름다움을 삶의 제 1원칙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예술이 인간과 사회를 고양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중 언어예술의 정수인 시는 우리의 마음에 숨을 불어넣어 정신으로 하여금 용약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무거움에서 해방시킨다.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에
꽃다발을 든 사람이 무려 두 사람이나 있다!
하나는 장미-여자
하나는 국화-남자
버스야 아무 데로나 가거라
꽃다발 든 사람이 둘이나 된다.
그러니 아무 데로나 가거라.
옳지 이륙을 하는구나!
날아라 버스야.
이륙을 하여 고도를 높여 가는
차체의 이 가벼움을 보아라.
날아라 버스야!
-「날아라 버스야」전문
「날아라 버스야」는 버스 안에서 꽃다발을 든 사람을 두 사람이나 보는 흔치 않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다. 사소하거나 작은 것에도 감탄하고 귀 기울일 줄 아는 시인의 자세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순수하게 느껴진다. 이 시에 등장하는 ‘꽃다발’은 ‘버스 안을 환히 밝혀 달리는 낙원’이란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사물이다. 그리하여 ‘차체의 이 가벼움’이라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며, 이 아름다움이 버스를 날게 만든다. 정현종 시인은 무엇보다 미적 체험(아름다움)은 어떤 추상적인 도덕적 훈화나 명령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항구적으로 사람을 끌어올리고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온갖 식물, 동물, 광물을 거쳐 불과 바람, 무기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 더불어 자신의 몸까지도 미적 체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산문집 날아라 버스야에 실린 31편의 글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산문들이다. 굳이 수식하지 않아도, 애써 알리려고 하지 않아도 시인이 체득한 아름다움이 행간에 가득하다. 이 산문집을 읽고 있노라면 시인과 더불어 우리의 마음도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