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지구를 정복했을 때
<그들이 지구를 정복했을 때, 인류는 무너졌다!>
뉴욕 시내 한복판에 거대한 외계 우주선이 나타난다. 영화에서 너무 익숙하게 보아온 탓인지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시련은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아오지 못한 참혹한 것이었다. 우주 유일의 과학문명을 자랑하던 인류가 개구쟁이 앞의 개미 떼처럼 삽시간에 떼죽음을 당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을 뉴스로 보며 시시각각 일어나는 사건을 무감각하게 방관하던 주인공의 삶도 일순간 무너진다. 도시 속 기계 부속품처럼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단’은 파괴의 날 우연히 생존하게 된다. 이대로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바퀴벌레처럼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살기위해, 살아야 하는 목적을 찾기 위해 주인공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난다.
[본문 발췌]
“그럼 어째서 전혀 동요하지 않는 거죠?”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세상이 이렇게 될 거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을 지도 몰라요. 왜 최근 들어 재해나 인류 멸망에 관한 이야기나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잖아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들 세상이 이렇게 될 거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바랐거나.”
- ‘적막을 깨는 소리’ 中
고개를 돌리다 심장이 멎을 뻔했다. 죽은 줄 알았던 남자의 눈꺼풀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꼭 악몽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남자의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남자가 숨을 쉬는지 확인하기 위해 좀 더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감은 눈꺼풀이 스르르 떠지는가 싶더니 안에서 나방의 애벌레만큼 통통히 살이 오른 구더기가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고 말았다. 먹은 것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은 위액이 섞인 쓴물뿐이었다.
- ‘하이에나’ 中
천장에 매달린 두 부부는 아이들의 안식을 방해하는 낯선 이를 경계하듯 목은 꺾이고 팔과 다리는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으스스한 광경으로 아이들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모습에 공포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굴 위한 살인인가. 어째서 제 손으로 아이들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그들은 죽어서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살인자 들이다. 세상이 끝나더라도 아이들을 지켜줘야 하는 것이 부모일 텐데 자신들이 삶을 포기했다고 하여 자식들까지 죽이는 잔인한 족속들. 저들은 벌을 받기 위해 죽어서도 편히 안식하지 못하고 저런 몰골로 목을 맨 채 천장에 매달려 영원히 방치될 것이다.
- ‘두 개의 검은 시신’ 中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살려. 당신들이 우리를 그냥 보내 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니야. 만약 내가 당신 같은 꼴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나를 살려줄 수 있어? 살릴 수 있냐고!”
-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살인이었다’ 中
지상에 인간이 사라져도 봄은 찾아온다. 예정보다 일찍 찾아온 겨울을 이겨낸 자연은 매정하고도 삭막했던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온통 푸른 옷으로 갈아입더니 주저 없이 이곳저곳을 꽃단장하기 시작했다. 시간도 멈춰버릴 만큼 맹렬했던 지난 추위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생명을 유지한 담쟁이넝쿨들은 나무를 휘어 감았고 죽은 인간들의 피를 한껏 들이마셔 잎에 저장한 것처럼 강렬한 붉은 색 잎을 가진 이름 모를 잡초들이 자축하듯 여기저기 자라났다.
- ‘인류의 기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