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 너구리
삶의 응달에서 건져낸 꽃잠 같은 소설집
채만식문학상 수상 작가 이시백의 《응달 너구리》
《응달 너구리》는 농촌과 삶의 주변부를 그려온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이시백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작가가 2010년 이후(《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2006년, 삶창),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년, 삶창), 《갈보 콩》(2010년, 실천문학사) 처음으로 펴내는 소설집이기도 하다. 이번 소설에는 제11회 채만식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나는 꽃 도둑이다》(2013년, 한겨레출판)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삶의 두터운 무게와 희비극이 뒤엉킨 밀도 높은 열한 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또한, 소설 뒤에 실린 정아은 소설가와의 대담은 소설을 읽는 깊이와 재미를 더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리얼리스트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농촌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몫’이란 주제의 대담을 통해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소설가로서의 고민과 생각을 진지하게 풀어낸다. 이런 고민은 열한 편의 단편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칠팔십 년대가 아닌 작금의 농촌의 모습과 그 안에서 전도되어 일어나고 있는 의식들, 그리고 여전히 삶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민중이라 지칭되는 인물들의 여러 층위를 가감 없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 마을의 이장 선거를 중심으로 다루면서 연평도와 4대강, 그리고 빨갱이로 통칭되는 이데올로기의 강박적 의식을 담아낸 〈잔설〉, 첫사랑 ‘영심’을 잊지 못해 벌어지는 ‘재선’의 에피소드를 통해 ‘구제역’의 한 단면을 묘사한 〈백중〉, 번지 없는 주막을 운영하는 욕쟁이 할머니와 ‘마지막 주막’을 보여주며 ‘4대강’과 정치적인 실책들을 풍자한 〈번지 없는 주막〉, 학생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애쓰는 노 선생의 모습에서 실업계 학교들이 어떻게 자본화되는가를 드러내고자 한 〈구사시옷생(九死ㅅ生)〉 등, 《응달 너구리》에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지 못하는, 근대 문화유산 정도로 취급되는 농촌의 모습과 기만당하는 민중의 모습이 소설로서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치열하게 그려져 있다.
‘시골장 할머니가’ 풀어놓을 것 같은 말의 미학
《응달 너구리》에서 보이는 농촌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전원일기〉의 풍경으로만 기억되는 농촌의 가짜 얼굴을 작가는 거침없이 벗겨내고, 이제 그런 공간은 우리 주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괴롭고 버겁고 불편하더라도 농촌의 진짜 얼굴을 직시하라고 말이다.
백_ 리얼리즘이라는 게 너무나 쉽게, 우리 사회적 환경으로 볼 때 여전히 유효한데도, 급격하게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던으로 전환되는 시기가 이해가 좀 안 되었어요.
대담에서 작가는 어떤 현실이나 역사적인 의식을 갖는 것, 즉 리얼리스트로서의 소설이 결코 소설의 변방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 안에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교조적이고 전형화된 민중문학에 독자들이 싫증” 났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리얼리즘 문학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웃기며 미학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나는 꽃 도둑이다》가 그랬고 이번 소설이 그렇다. 소설 속 인물들이 ‘무르춤하다’, ‘엽렵하다’, ‘불뚱가지’ 같은 도시에서 살아온 이들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단어들을 내뱉는 이유는, “우리가 쓰는 어휘는 어떤 평론가나 어떤 대학 교수보다 시골장에서 만난 나물 파는 할머니나 국밥집 할머니가 더 풍성할 수 있”다는, 어쩌면 그것이 농촌이 가진 미학의 결정적 지점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멸종 언어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누구에게는 ‘삶의 응달에서 건져낸 꽃잠 같은 언어’이기 때문이며, 한국 문학의 깊은 잠에서 건져낸 소중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우리가 서 있는 응달에 던져준 열한 편의 소설은 우리가 건져내야 할 ‘꽃잠 같은 삶’임에 틀림없다.
번지 없는 땅, 건강한 생명력을 찾아서
의뭉한 속내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소설
“결국은 돈이여. 돈이믄 웂는 사람두 모이구, 있든 사람두 갈라스게 허는 게 돈이여.”
〈흙에 살리라〉의 황 노인의 말도막 하나가 우리 앞을 턱 하니 가로막는다. 여기만은 아니겠지 했던 농촌도 별다를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자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건 가능한 일일까? “낮에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거나 공장에 나가고, 있는 땅은 놀리기 뭐해서 부업 식으로 하는 거죠.” 작가는 대답한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건 옛말이다. 이 사회는 더는 농촌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는 세대를 생산해 내지 않는다. 농촌에서 사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꼭 농촌에서 살아가는 걸 뜻하지는 않게 됐다. 바꿔 물어보자. 농촌 소설이 읽히는 건 가능한 일일까? “……책을 안 보기도 하고.” 작가는 대답한다. 농촌 소설이 읽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앞서 소설이 읽히는지를 살펴보는 게 먼저일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농촌이란 커다란 은유를 통해서 무엇을 보려고 한 것일까.
“세상 어디에 번지 없는 땅이 있겠냐.”
〈번지 없는 주막〉 속 노파의 말처럼 자본 밖에 자리한 번지 없는 땅이 결국 존재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으리라. 아직 우리 삶의 여러 층위에는 그곳이 도시건 농촌이건 어디건 살아 숨 쉬는 땅의 건강한 생명력이 남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발견의 시작점이 가장 평범한 곳인 농촌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럼으로 농촌에서 살아가는 건 가능한 일일까, 농촌 소설이 읽히는 건 가능한 일일까, 라는 질문은 너무 이르다. 그 질문에 앞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살아갈 것이며, 어떻게 읽어갈 것인지에 대한 답을 먼저 끌어내야 한다. 의뭉한 속내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응달 너구리》를 읽으면서 삶은 이토록 두텁다는 걸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면서.
이시백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던 증조부와 이야기하기를 즐거워하던 아버지를 잇는 역사적 사명을 타고 여주의 주막거리 길갓집에서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보려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 소설을 공부했으나 대체로 흐린 주점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엉겁결에 〈동양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이란 걸 했다. 지금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광대울에서 주경은 조금 시늉을 하나 야독은 충실히 하지 못하고 쓰러져 잠들기 잦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장편소설 《종을 훔치다》, 《나는 꽃 도둑이다》, 《사자클럽 잔혹사》, 《검은 머리 외국인》, 소설집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에세이 《시골은 즐겁다》, 《당신에게, 몽골》 등이 있다. 제1회 권정생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과 제11회 채만식문학상을 받았다.
잔설(殘雪)
흙에 살리라
백중(百中)
응달 너구리
개 도둑
구사시옷생(九死ㅅ生)
봄 호랑이
번지 없는 주막
맨드라미 필 무렵
저승밥
열사식당(烈士食堂)
대담 리얼리스트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농촌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몫
이시백×정아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