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달자다
| 글과글사이 세계문학 영미시선집 시리즈 012 |
외설와 예술의 경계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킨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작가 데이비드 로렌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외설 시비를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많은 이들을 사랑을 받기도 했다.
소설로 유명한 그이지만 1,000여 편에 이르는 시를 썼을 정도로 시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시는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불 같은 사랑을 추구하며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인생을 살았던 그는 세상에 알려진 외설 작가라는 오해와 달리 생명과 자연의 순수한 즐거움을 노래하는 뜨거운 생철학자이자 원시주의자, 사회 비판가였다. 이것은 그가 살았던 시기인 제1차 세계대전의 처참함과도 맞물려 있다.
생명의 에너지, 원초적 에너지를 묘사하며, 육체를 부정하지 않는 그의 시적 태도는 삶이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구체적 형상이자 오감으로 전해지는 생생한 감각이라는 깨우침을 전해준다.
글과글사이 세계문학 영미시선집 시리즈 제10권부터 제12권까지 3권은 D. 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시선이다.
제12권 D. 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시선 III 《우리는 전달자다(We are Transmitters)》는 로렌스의 시집 《새로운 시》(New Poems, 1918), 《만(灣)》(Bay: A Book of Poems, 1919), 《팬지》(Pansies, 1929)와《마지막시집》(Last Poems, 1932)에서 39편의 주요 작품을 선별, 우리말로 번역하여 영어 원문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살아 있음에 대한 기쁨, 생명의 활력을 노래하다.
사랑과 욕망이야말로 원초적인 생명력의 근원이다”
우리는 전달자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생명의 전달자다.
하여 우리가 생명을 전하지 못한다면, 우리를 통해 흐르는 생명은 멎고 만다.
그것이 바로 신비로운 섹스의 역할, 전진(前進) 흐름이다.
섹스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전하지 못한다.
일을 할 때도, 우리가 하는 일에 생기를 불어넣으면,
생기, 훨씬 많은 생기가 우리 몸에 밀려들어 금방 벌충되기에
우리의 몸이 일과(日課) 내내 생기의 잔물결로 일렁인다.
사과 푸딩 만드는 여자건, 걸상 만드는 남자건,
생기가 푸딩에 배어들면, 푸딩이 맛있고
걸상도 멋들어져,
건강한 생기의 잔물결이 몸을 파고드는 여자도 흡족하고,
남자도 흡족하다.
주어라, 그러면 주는 대로 받으리라
그것이 여전히 인생의 진리다.
그러나 생명부여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야비한 멍텅구리한테 그냥 넘겨주는 일도, 산송장이 잡아먹게 그냥 놔두는 일도 아니다.
설령 그것이 한낱 퇴색한 손수건의 하얀 색에 배어들고 말지라도,
생명이 없었던 곳에 생명의 속성을 불붙이는 일이다.
We are Transmitters
As we live, we are transmitters of life.
And when we fail to transmit life, life fails to flow through us.
That is part of the mystery of sex, it is a flow onwards.
Sexless people transmit nothing.
And if, as we work, we can transmit life into our work,
life, still more life, rushes into us to compensate, to be ready
and we ripple with life through the days.
Even if it is a woman making an apple dumpling, or a man a stool,
if life goes into the pudding, good is the pudding
good is the stool,
content is the woman, with fresh life rippling in to her,
content is the man.
Give, and it shall be given unto you
is still the truth about life.
But giving life is not so easy.
It doesn't mean handing it out to some mean fool, or letting the living dead eat you up.
It means kindling the life-quality where it was not,
even if it's only in the whiteness of a washed pocket-handkerchief.
사람이 되자
제발, 사람이 되자
기계에 정신이 팔려
라디오나 영화나 축음기 같은 기계가
우릴 즐겁게 해주는 내내 꼬리를 말고 앉아 있는 원숭이들이 아니라.
헤벌쭉 생글대는 얼굴의 원숭이들이 아니라.
Let Us Be Men
For God's sake, let us be men
not monkeys minding machines
or sitting with our tails curled
while the machine amuses us, the radio or film or gramophone.
Monkeys with a bland grin on our faces.
아름다운 노년
사랑스럽게 늙어야 한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평화로 주름져 무르익은
성취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일상의 거짓들에 신물 내지 않고 의연하게 살았던
한 인생에 절로 충실히 배어드는 주름진 미소,
사람이 거짓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산다면
사과처럼 무르익어, 노년에도 피핀 사과처럼
향긋하리라.
늙은이들은 사랑에 신물이 나더라도,
사과 향처럼 흐뭇해야 한다.
노랗게 물드는 나뭇잎처럼 향긋하고, 가을의 차분한
정적과 충만감에 물든 양 아련해야 한다.
소녀가 절로 이렇게 말하도록:
살다 늘어간다는 건 참 멋진 일임에 틀림없어.
우리 엄마 좀 봐, 어찌나 향긋하고 평화로운지!
청년도 이렇게 생각하게: 정말 우리 아버지는
온갖 풍파(風波)를 만났지만, 참 멋진 인생이었던 것 같아!
Beautiful Old Age
It ought to be lovely to be old
to be full of the peace that comes of experience
and wrinkled ripe fulfilment.
The wrinkled smile of completeness that follows a life
lived undaunted and unsoured with accepted lies
If people lived without accepting lies
they would ripen like apples, and be scented like pippins
in their old age.
Soothing, old people should be, like apples
when one is tired of love.
Fragrant like yellowing leaves, and dim with the soft
stillness and satisfaction of autumn.
And a girl should say:
It must be wonderful to live and grow old.
Look at my mother, how rich and still she is!
And a young man should think: By Jove
my father has faced all weathers, but it's been a life!
로렌스가 시를 통해 보여주는 사랑은 그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플라톤적 사랑이 아니라 극히 에로스적인 사랑으로, 표현이 매우 직접적이고 사실적이고 감각적이다. 말하자면, 정열적인 연인들의 사랑이요, 성인들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다. 로렌스 부부의 위기를 언급하며 소개한 일화처럼, 마냥 좋다가도 금세 싸우고 토라졌다가 어느새 또 욕구하고 질투하고 막 그러는 사랑, 그것이 바로 시인 로렌스가 여러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솔직한’ 실제 사랑의 생태다. 그것은 비단 인간의 사랑에 그치지 않고, 동식물들의 생태를 다룬 작품들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의 여러 소설에 그려지는 사랑보다 아니 그의 ‘노골적인’ 그림들보다도, 어찌 보면 ‘훨씬 더 외설적으로’ 비쳐질 만도 했을 텐데 용케도 법망을 피했구나, 문득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다. 그동안 그의 소설들에 비해, 시에 대한 관심이 많이 부족했다는 판단에서다. 또 로렌스 시의 정수 역시 ‘사랑’이요, 그의 직접적, 사실적, 감각적인 표현 방식과 그 결과물들이 후대의 시인들에게 미친 영향 또한 소설 못지않다는 판단에서다. 영국의 시인 라킨(Philip Larkin, 1922-85)이나, 로웰(Robert Lowell, 1917-77), 플래스(Sylvia Plath, 1932-63)와 레트키(Theodore Roethke, 1908-63)같은 미국 고백시인들(Confessional Poets)의 더더욱 솔직하고 노골적인 표현, 터부나 금기의 막힘없는 노출과 폭로는 분명 선배 시인 로렌스로부터 물려받은 아주 귀중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 옮겨 엮은이의 「D. H. 로렌스의 삶과 문학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