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청백리 이영 선생
청백리 괘편당과 같은 분이 계신다는 것은 후세들에게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비록 괘편당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병조참판을 지냈고 청백리로 선임되셨다는 정도이다. 괘편당이란 아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면 제주목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 행장 속에 평소 사용하시던 말채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관급이라 하여 관아 동각에 걸어두고 오셨다 하여 제주 백성들이 공의 청렴을 기린다고 한다.
괘편당이 타계하신 지 금년으로 453년이 되었다. 선생의 방 5세손 육한공께서 부친 희졸헌공이 제주목사로 부임함에 부친을 따라 임지로 가서 선생의 사적을 발견하고 행적을 수집하여 행록을 찬술한 것이 1695년 12월이었으니 행록이 지어진 지 또한 321년이 되었다.
육한공은 행록에서 말하기를 “때때로 채색된 괘편의 아래에서 바라보며 배례하니 청풍의 여운에 황홀하여 당일 모시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갱장의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라고 하였다
일찍이 명종은 괘편당의 청렴함을 “해와 달과 그 빛을 다투도다. 청렴하고 근심함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나라 일을 스스로 책임지니, 내가 심히 아름답게 여겨 특별히 의복을 내리노라.”고 하며 찬미하였으니 누대에 걸쳐 칭송하고 본받음이 당연한 일이다.
옮긴이는 이 책을 번역하며 늦게나마 출판하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렇게 훌륭한 선조의 실기를 그대로 방치해두고 있음이 부끄럽게 생각되었으나 이제라도 후손은 물론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널리 알리어 정신적 귀감이 되도록 함에 의의가 있다고 한다.
옮긴이 구본욱은 대구향교 장의, 영남일보 자문위원으로 있으며 『300년간 지속해온 논쟁』, 『국역 대구팔경 한시집』, 『임하 정사철과 낙애 정광천 선생』 등의 저서가 있다. 또한 「대구지역의 성리학을 연 溪東 全慶昌」, 「계동 전경창의 연보작성을 위한 시로」, 「연경서원의 경영과 조선중기 대구지역의 유학」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