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2판)
“묵자와 예수는 너무나 같은 점이 많다.
거의 쌍둥이 같은 느낌마저 든다.
역시 한줄기에서 뻗은 두 가지라고 봐야 할 것 같다.”
_문익환
한 권으로 읽는, 겸애와 반전의 사상가 묵자
우리에게 묵자는 낯선 사상가다. 묵자의 가르침이 담긴 책 《묵자墨子》 원문을 번역하고 해설한 책은 여러 권 나와 있지만, 동양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 쉽지 않다. 동양철학책이나 동양 고전 관련 책에서 한 꼭지씩 묵자를 다루긴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맛보기에 불과하다. 이 책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는 중국철학이나 고전을 잘 모르는 사람도 묵자 사상의 정수를 이해하고 그 울림을 느낄 수 있도록 젊은 동양철학자 임건순이 눈앞에서 강의하듯이 쉽게 풀어 썼다. 2000여 년을 앞서간 의로운 사상가 묵자가 21세기 한국에 겸애兼愛와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다 보면,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동양철학의 깊은 감동을 덤으로 느낄 수 있다.
2000년 만에 복권된 의로운 사상가 묵자
《묵자》 원전은 한나라 때까지 71편이 전해졌다고 하나 현전하는 것은 53편이다. 《묵자》의 핵심은 ‘묵자 10론’, 곧 겸애(兼愛), 비명(非命), 비공(非攻), 상현(尙賢), 상동(尙同), 천지(天志), 명귀(明鬼), 절용(節用), 절장(節葬), 비악(非樂)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묵자 10론’을 구성하는 《묵자》 원문의 중요한 대목을 쉬운 문장과 입담으로 풀어냈다. 묵자가 어떤 사람인지, 묵가(墨家)는 어떤 집단인지, 그들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과 맥락, 후대의 분열과 변질, 중국 사상사에 차지하는 의미까지 흥미진진하게 살펴본다. 게다가 오늘날의 현실까지 깜짝 놀랄 만큼 갈파하는 묵자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중국에서 다양한 사유가 활짝 꽃피었던 때는 선진(先秦) 시대의 막바지, 곧 전국 시대(서기전 403~서기후 221년)였다. 당시 묵자 학파(묵가)의 사상은 공자의 유가와 함께 양대 현학(顯學)으로 손꼽힐 만큼 널리 지지를 받았다. 한비자는 “오늘날 이름 높은 학파는 유가와 묵가다”라고 말했다. 맹자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 묵자의 본명)의 소리가 천하에 가득하다”고 경계했을 만큼 대중적 인기도 높았다. 그러나 진 제국의 통일 이후 묵가는 제국에 위협이 되는 불온한 사상으로서 땅에 묻히고 불태워지며 잊혀갔다. 진의 뒤를 이은 한 제국 때부터는 유학이 중국의 사상계를 제패하고 보수화의 길을 걸으며, 마치 기독교가 사상계를 제패했던 유럽의 중세처럼 암흑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청나라 말엽에 필원(畢沅)과 손이양(孫?讓)이라는 학자가 《묵자》 원문에 주석을 달고 정리하면서 묵가가 새로이 근대의 조명을 받게 된 것을 두고 신영복 선생은 “2000년 만의 복권”이라고 했다.
“묵가는 좌파 사상과 좌파 운동이 그 이후 장구한 역사 속에서 겪어나갈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역사의 초기에 미리 보여준 역설적인 선구자였다.”
_신영복
수공업에 종사한 검은 무리, 묵가
묵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2300~2500년 전, 보편 복지(겸애)와 침략전쟁 반대(비공), 의로운 정치(의정)를 주장하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천지)이라 말하면서, 그 뜻을 펼치고자 앉은자리가 따뜻해질 새 없이 동분서주했던 사상가이자 조직가이며 활동가다. 그의 생몰년은 정확하지 않고, 다만 공자 이후, 맹자 이전 사람임은 분명하다.
묵자는 천한 계층인 공인 출신 지식인으로 추측되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학파인 묵자 무리, 곧 묵가도 공인?장인과 무사들로 이루어졌다. 묵가는 결속력이 매우 강력한 집단으로서, 제자를 양성하고 당시의 여러 제후와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사상을 설득하러 다니는 한편 강대국의 침략을 당할 위기에 놓인 약소국을 위해 성곽을 방어하고, 방어를 위한 각종 무기와 설비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묵가는 책과 문헌을 정리하는 설서(說書), 수공업 기능과 군사 기술을 익혀 몸으로 일하는 종사(從事), 사상 전파를 위한 논증과 언변을 갈고닦는 담변(談辯), 이렇게 세 가지 전공별로 전문가를 양성하여, 분업과 협업으로 조직을 운영했다. 역사상 보기 드문, 체계적인 결사체였다.
2000여 년을 앞서 근대를 지향한 사상가 묵자
일본의 동양철학자인 와타나베 다카시(渡邊卓)가 “고대에 너무 일찍 근대를 지향했으며 그 때문에 절멸했고, 역시 그 때문에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되는 사상 집단”이라고 한 것처럼, 가족 윤리를 우선시하고 군주의 덕목을 중시했던 당대의 다른 학파와 달리 혈연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선 보편적 윤리와 합리적 사회 질서를 주창했던 묵가는 동양철학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묵자》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면서 이런저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씨름하는 우리에게도 가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묵가는 고대에 너무 일찍 근대를 지향했으며 그 때문에 절멸했고, 역시 그 때문에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되는 사상 집단이다.” _와타나베 다카시(동양철학자)
“양주와 묵적의 소리가 천하에 가득하다.” _맹자
“오늘날 이름 높은 학파는 유가와 묵가다.” _한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