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이제현 사집

이제현 사집

저자
이제현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일
2015-12-16
등록일
2016-04-12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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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 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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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약 0

책소개

사는 원래 성당(盛唐) 시기부터 널리 유행한 민간 가요였는데 송대(宋代)에는 사대부 문학의 하나로서 크게 유행했다. 고려에는 음악과 함께 전파되었다. 고려 예종(睿宗) 9년(1114)에 송 휘종(徽宗)이 사신을 통해 속악(俗樂)인 신악기와 악보 등을 전해 주었고, 11년(1116)에 다시 아악(雅樂)인 대성악(大晟樂)을 전해 주었다. 이렇게 전해진 당악(唐樂) 중에는 안수, 구양수, 유영, 소식 같은 북송 사인(詞人)의 사 작품이 수록되었는데, 이를 통해 고려에 사가 전파된 것으로 파악된다. 고려 사의 창작은 이러한 당악의 전파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13대 선종(宣宗)이 〈하성조(賀聖朝)〉를 지었다고 하고 16대 예종이 여러 차례 사를 지어 신하들에게 선사했다 한다. 다만 이는 기록에 불과할 뿐 사 작품은 전하지 않아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최초의 고려 사는 이규보(李奎報)의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 수가 11수에 불과해 고려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작품 수와 질적인 면에서 고려사를 대표하는 이로는 단연코 이제현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제현 사는 ≪익재집(益齋集)·익재난고(益齋亂藁)≫에 따르면 작품 수가 54수로(1수는 사패명만 전한다) 현전하는 고려 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활용한 사조 또한 15조로 다양한 편이다. 평가도 매우 높다. 사 비평으로 유명한 청대 학자 황주이(況周?, 1849∼1904)는 ≪혜풍사화(蕙風詞話)≫에서 “이제현 사의 …이러한 구는 북송과 남송 명가의 사 중에 두어도 거의 손색이 없다(益齋詞, …此等句, 置之兩宋名家詞中, 亦庶幾無愧色)”라고 평했다.

이제현이 사의 창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경으로는 연경에서의 만권당(萬卷堂) 활동을 들 수 있다. 고려 충선왕(忠宣王)은 양위한 이듬해인 1314년 원나라의 수도 연경의 사저(私邸)에 만권당을 세우고 당시 유명한 문인들과 교유했다. 이 가운데 조맹부, 장양호, 우집이 이제현과의 교유에 적극적이었다. 당시 원나라 문인은 시뿐만 아니라 사의 창작에도 능했는데, 특히 사적인 교유에서는 사를 많이 창작했다. 이들과의 교유를 통해 이제현은 사 창작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또 사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이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이해도도 커졌을 것이다.

그는 여행 사를 많이 남겼다. 사를 통해 여행의 서막을 여는 것은 사의 기능과 역할의 새로운 면을 개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의 내용에서 사에 대한 창작 의지를 다짐하는 것도 독특한 면모다. 여행 중에 경험하는 좋은 경치를 ‘청아한 노래’ 속에 모두 들인다는 것은 여행과 사의 창작을 상호 연관해 언급하는 것으로, 이는 송대 이후 여행과 사의 창작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나타난 문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송대 여행 사는 부임지로 떠나며 나누는 송별의 정, 벼슬살이의 고단함, 귀양 가는 슬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 나그네의 외로움 등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의 창작을 선언하며 떠나는 여행도 거의 없었고 사의 창작 의지를 다짐하는 내용의 사도 거의 없었다. 바로 이 점에서 이제현 사의 가치와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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