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살인사건은 한국 강력범죄 역사상 아주 특이했던 사건이다. 첫째, 오직 부유층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젊은 민간인들이 조직을 결성하고 살인을 위한 아지트까지 건설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가장 잔혹했던 행동대장이 납치했던 인질에 연정을 느껴서 도주를 용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조직이 와해됐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두 번째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야기이다. 느닷없이 지존파 범인들의 ‘살인공장’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탈출해 그들의 실체를 경찰에 신고한 여성의 삶을 납치 시점부터 쭉 다루었다. 이 여성은 비록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는 했지만, 심각한 범죄 트라우마로 오랜 세월 방황해야 했다. 과연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극도로 흉악한 범죄자로 만든 증오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런 증오 속에서도 살인마의 가슴에서 싹튼 한 여인에 대한 그 애틋한 연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