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십여 년 전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일어났던 일이다.
이 학년이 되면서 우린 특별활동부를 선택해야 했다. 어디에 들어가야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함께 연극부를 선택했다.
처음엔 내가 연극부를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자각이 없었다. 연극부에 들어가기 전까진 진짜 무대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연극을 처음 본 건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뒤였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하곤 전혀 다른 감동이었다. 함께 연극을 보고 나온 우리들은 연극부의 특성을 살려서 그해 학교축제에서 연극을 공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땐 입시라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그 정도 시간은 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학교축제는 여름방학을 지나 가을에 열렸다.
나는 그때 처음 희곡이라는 걸 써보았다. 여름방학이 되기 전에 완성하기로 하고 집필에 들어갔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그동안 내가 학생으로서 느꼈던 여러 가지 것들을 극으로 풀어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승전결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학생으로서의 풋풋한 감성은 그대로 녹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희곡을 완성한 뒤에 우리는 방학을 이용해 연극연습에 들어갔다. 연극부 담당이었던 국어선생님의 지도하에 나는 연출까지도 도맡아 하게 되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해 여름방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지나갔다.
축제일이 다가왔고 우리는 준비한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기억에 의존해 내용을 간단히 간추려보면 이런 것이었다. 문제아라기보다는 공부를 등한시하는 한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공부보다는 만화를 그리는 것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한다. 그런 모습을 죽도록 싫어하는 담임선생과 학생의 재능을 살려야 한다는 미술선생이 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이야기였다. 당시에 유행했던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몇 가지 설정을 보란 듯이 가져와 내 식대로 이야기를 다시 만든 것이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괜찮았다.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면서 내 첫 번째 연극은 무사히 끝이 났다.
이 학년을 그렇게 보낸 우리는 삼 학년이 되면서 특별활동부하곤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신경을 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졸업을 할 때가 되었다. 졸업장과 앨범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제일 먼저 앨범부터 살펴보았다. 우리 반 친구들보다 먼저 확인한 건 특별활동부를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 학년 때 활동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놓은 것이었다. 나는 그걸 찍던 날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앨범을 넘겼다. 기억에 남아 있는 모습으로 사진은 실려 있었다. 하지만 사진 밑에 적혀 있는 건 ‘연극부’가 아니라 ‘고전답사부’였다. 듣도 보도 못한 고전답사부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서 나는 한 해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배는 그때서야 연극부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공부에 열중해야 하는 선배들에겐 절대 말하지 말라는 선생들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알려주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이런 경우는 더욱더 자주 겪게 되었다.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나의 무심함에 놀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후배에게 진실을 듣게 됐을 때 느꼈던 그 분노가 가끔 그리워지기도 한다. 결국 현실이란 벽에 부딪쳐버린 많은 분들과 함께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